육아일기,육아상식 2010. 9. 10. 12:41

비열한 어른이란

어른인 나는 얼마나 비열한가.

7살 재서랑 동갑짜리 직장 동료 아들래미가 혼자 목욕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목욕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재서에게

너랑 똑같은 나이에 친구 누구는 혼자서 목욕도 한다더라. 머리도 감는다더라

흘리는 말인 듯 슬쩍 뱉었다.

'그런데 너는 왜아직도 목욕하기도 싫어하냐'는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이 정도면 비교한건 아니겠지' 한편으론 자기위안을 하며

뜨끔하는 양심을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왜 이리 며칠씩 머리에 남느냐 말이다.

밥하느라 정신없는데 다리 사이를 파고 들며 징징대는 수연이가 힘들어

"수연이 좀 봐줘~" 요청을 했지만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재서아빠.

서랍을 빼서 놀다가 닫는데 기어이 손가락이 끼고 말았다.

급히 서랍을 빼니 그제서야 숨넘어갈듯 울어제끼는 수연이,

쪼끄만 손톱밑이 거무죽죽하게 물들어 가고 있는걸보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났지만

말해봤자 재서아빠 삐질테고 그러면 또 며칠 말 안할테고 내가 사과해야할테고

짧은 순간 그게 싫어서 만만한 재서에게 화살을 돌렸다

너 밥먹지 마. 엄마 밥안할꺼야.

재서한테는 부탁조차하지 않았으면서 너 엄마가 부탁하는 소리 들었어 못들었어.

앞으로 부탁하지 않더라도 엄마가 밥할때는 니가 수연이랑 놀아줘야해 알았어?!!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수연이를 보고 놀란 녀석 눈이 휘둥그레져있는데

엄마란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자기가 잘못한 것인냥 아무말도 못했다.

TV가 나왔을때, TV로 가장 많은 나쁜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 재서와 수연이었지만

TV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총 보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한번 틀어놓으면 가장 오래 보는 것은 언제나 어른들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행동과 말이 달랐다.

어른들 자신에 대한 잣대와 어린이들에게 대는 잣대가 달랐다.

TV는 나쁘기도 하지만 재밌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재밌기때문에 좋아하면서 (행동)

하지만 어린이들은 많이 보면 나쁘다고 하면서(말)

TV를 안나오게 했다.

이제 어린이는 TV를 못보지만 어른은 TV를 본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TV를 통해서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TV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어린이에게는 불허된 걸 어른들은 한다는 걸 안다. 말은 안하지만..

어른들은 어린이에게는 허락하지 않고 자기들은 할 수 있는.. 그런 권력이 있다는 걸 안다.

자기는 하지 못하는 행동을 만만한 어린이에게는 통제하는 권력을 부리는 어른들은 비열하다.

이게 무슨 '권력'씩이나 되냐고.. 하지만 권력이다. 크던 작던..

박물관에 가면 이젠 더 이상 전시된 것보다는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휘휘 바뀌고 음성이 들리는 영상자료만 보고는

재미없다는 재서.. 그 보다 더 어릴때는 그런 선입견이 없었다.

빠른 화면 이동에 재서보다 어린 나이에 재서때보다 더 많이 노출된 수연이는 책을 다 보지 않는다.

그 또래의 특징일수도 있지만, TV 노출이 거의 없었던 재서가 책을 좋아했던 것과 달리

수연이는 한 페이지에 한 문장도 듣고 있질 못한다. 휘리릭 넘기도 다른 책을 가져 온다.

사실 TV 광고와 영상에 대한 부분때문에 TV를 안보여주고 싶었지만,

고작 다섯명 살고 있는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 그 중에서 약자인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은 권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걸 익히게 되겠지.

권력 관계에서 약자에 있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강자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자신이 할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한다.

권력이 있는 자들은 훨씬 더 깊이 더 많이 생각하지 않으면

아주 손쉽게 나쁘게 권력행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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